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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소개

강원도에서 보낸 여름휴가

관리자   /   2004-07-30

2004년 7월 12일 월요일, 장마가 한창인 휴가 첫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10시가 거의 다 되었다.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가볍게 끝내고 짐을 눈에 보이는대로 챙겨서 나왔다.
동행하기로 약속한 고향친구놈를 만나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은 일정한 목적지를 두지 않고 발길 닿는 곳으로, 생각나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매표소 앞에 서니 홍천이란 지명이 눈에 띈다.
결국 홍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서울을 빠져나와 양평을 거쳐 홍천으로 향하고 있다.
가끔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이 온통 흙탕빛으로 잔뜩 불어나 있다.
이게 얼마만의 탈출인가 싶다. 불어난 강물이 시원스레 잘도 흘러간다.

두시간 남짓 달린 버스가 마침내 홍천에 도착했다.
홍천군은 남한의 시·군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으며, 서울특별시의 3배이다.
북쪽으로 춘천시와 인제군, 서쪽으로 경기도 가평군·양평군, 남쪽으로 횡성군과 평창군, 동쪽으로 양양군과 강릉시에 접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홍천군을 시원스레 가로지르고 있는 홍천강이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불어난 강물은 거침없이 흐르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난 우린 그렇게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들뜬 마음도 잠시 비는 더욱 거세진다.
민박집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민박이라는 간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가 많이와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다.
우산을 쓰긴 했지만 바지가 허벅지 부분까지 다 젖었다. 이런 장난이 아닌데..
허기진 배를 채우려 근처 식당에 들어가 된장찌개를 시켰다.
이런 곳까지 와서 고작 된장찌개를 먹다니.. 토속음식을 먹어줘야 하는데..
옆테이블에 앉은 아가씨 3명이 찐~하게 구사하는 사투리를 들으니 서울을 빠져나왔음을 다시 실감한다.
주인아주머니께 근처에 민박집이 있는지 물었더니 여기 근처에는 민박하는 집을 없을거라 하신다.
이런.. 어쩐다. 밖에서는 날은 벌써 저물고 비가 그칠줄을 모른다.
하는 수 없이 인근 모텔로 들어갔다. 홍천강 바로 옆에 자리잡은 모텔인데도 비용은 삼만원으로 그리 비싸지 않다.

다음날 눈을 떠 보니 어느덧 10시다.
이런, 넘 많이 자 버렸다.
날이 궂기는 했지만 비는 소강상태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아점을 해결하고 매표소 앞에 다시 섰다.
또 어데로 갈까나..
원통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들어본 기억이 나긴 하지만 왠지 무지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다.
매표소 직원 아가씨에게 출발시간을 물어보니 지금 비가 많이 온 상태라 차가 언제 떠날지 모른단다.
원통으로 떠나기 앞서 홍천을 좀 더 구경하기로 했다.
다리 한가운데서 내려다본 홍천은 불어난 강물이 시원스레 내려가고 구름은 낮게 깔리어 산을 덮고 있는 것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비로소 여행을 떠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가 두메산골에 이름모를 마을을 거쳐 인제를 지나 원통으로 향한다.
얼마쯤 갔을까.. 머리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여태 버스를 타고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게 바로 차멀미인가보다.
경치고 뭐고 간에 빨리 원통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만큼 힘이 들었다.
차멀미가 이다지 고통스러울 줄이야. 배멀미도 이렇겠지..

원통에 도착해보니 정말 깡촌마을이다.
높은 건물은 하나도 눈에 띄지않고 터미널은 허접하기 그지없다.
여기가 대체 우리나라의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야?
답답한 마음에 근처 서점에 들러 대형 지도를 구입했다.
우리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알것 같다.
외딴곳으로 얼마쯤 걸었을까... 강건너에 세련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이런! 다리를 건너 마을에 도착해보니 쉴만한 곳이 모텔밖에 없다.
짐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보러 나섰다.
비가 올듯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둑을 따라 얼마나 갔을까 이내 아무도 없이 한적한 곳에 이르니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산꼭대기서만 소리를 지르라는 법이 있나 목청이 찢어져라 고함을 꽥꽥 질려됐다. 누가 봤음 미친놈으로 보였을 거다.
십년묵은 체증이 확 뚫린듯이 속이 정말 후련하다.

모텔 1충에 있는 식당에 들러 감자전에 공기밥을 시켜서 먹었다.
처음 먹어본 감자전.. 맛이 정말 감자맛이다.
소화도 시킬겸해서 아까 마을로 오기 위해 건넜던 다리로 가 보았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를 일부러 주저없이 맞아보았다.
어렸을때 이후로는 산성비니 뭐니해서 비를 맞는 것을 꺼려했는데.. 몸속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정말 시원하다.
그날은 반신욕을 하고 잠을 일찍 청했다. 기분이 뭐라할 수 없이 참 좋다.

다시 터미널로 왔다. 무늬만 터미널이지 촌놈이 보기에도 너무 허접하다.
군대가 근처에 있는지 제법 군인들이 많이 보인다. 나도 군대시절이 있었나 싶다.
동해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사실 내 고향은 동해바다가 있는 포항이다.
바다가 가까워 늘 날이 더울 때면 주저없이 친구들이랑 어울려 걸어서 바다로 가곤 했다.
지도를 펼치고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지도상에 양양과 주문진 사이에 동호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주문진해수욕장까지 여덟개나 되는 해수욕장이 늘어서 있다.
양양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제는 그렇게 멀미땜에 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두메산골 도로에 적응이 됐나 보다.
버스가 한계령을 넘어 설악산 정상부근을 막 넘어섰을 때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절로 나왔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온통 구름으로 마치 비행기안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양양터미널에 내리니 바다내음이 난다.
사실 내 코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편인데도.. 냄새만으로 바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것 같다.
근처 꽃가게 주인아저씨에게 바다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내가 짐작했던 방향이 맞았다.
주인아저씨가 걸어서 가기에는 먼 거리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시는 걸 굳이 걸어서 가겠노라고 했다.
바다로 가는 보도블록 양옆으로 흐들어지게 피어난 꽃들이 비를 맞아서인지 싱싱하다.
그런데 이 놈의 잠자리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눈앞에서 빈정대며 날아다니는 꼴이 얄미워서 날아다니는 놈을 잡으려고 했더니.. 역부족이다.

삼사십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드디어 바다다~!!
에매랄드빛으로 새~파란 바다가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고향친구다.
짜슥! 그간 잘 있었냐? 바다야~
들어선 해수욕장엔 아직 비수기라 그런지 썰렁하기 그지없다.
모래사장에는 동네 강아지 두마리, 그리고 우리 둘밖에 없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신발속에 넣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차디찬 바닷물에 들어갔다.
둘이서 얼마를 놀고 나니 싱겁다. 해수욕장은 사람이 많아야 제맛인데.. 아무리 장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을까..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께 여쭈었더니 여기는 해수욕장이 아니란다.
어쩐지 백사장 길이가 너무 짧다 했더니만..

이번에는 제대로 된 해수욕장을 찾아 길을 나섰다.
'동호 해수욕장' 이란 팻말이 보인다. 팻말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언덕배기에 한 아저씨가 힘겹게 비료를 담은 손수래를 끌고 가신다.
자세히 보니 바퀴에 바람이 없다. 바퀴에 구멍이 난 모양이다.
손수래를 끌어주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얼마쯤 끌었을까..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프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할걸.. 그랬다.

동호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동호해수욕장은 예로부터 염분의 농도가 높아 각종 피부병이나 신경통에 좋다고 한다.
해수욕장 구경도 잠시, 어느덧 날이 어둑지고 짐부터 풀어야겠다 싶어 민박집을 찾아나섰다.
바다가 보이는 것 말고는 좁은 방에 허접한 욕실이 하나.. 내 방보다 못한 방이 삼만원이란다.
비수기에도 방값이 이 정도라면 성수기는 얼마나 갈지 상상이 안 간다.
근처에 TV에서나 본듯한 호화 펜션건물이 보인다.
이런데는 얼마나 하려나.. 방값을 물어보니 하루밤 묵는데 십만원이란다.
십만원.. 넘 비싸다고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웃기만 하신다.
결국 모텔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 모텔은 시설은 호텔급이다.
삼만원의 민박집에 비하면 만원 더 준것이 아깝지가 않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에 둘이 마주않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탁자까지..
많이 걸어서인지.. 몸이 피곤하다.
바다는 내일 보기로 했다.

다음날 모텔에서 나와 인근 식당에서 아점을 해결한 후 주인 아주머니께 하조대 해수욕장에 길을 물었더니 마침 주인아저씨가 그 쪽으로 차를 가지고 배달을 가신단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군대 입대한 아들이 서울에서 한때 생활을 했다고 하시면서 이내 아들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그 모습이 순박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하조대 해수욕장 도착해보니 아쉽게도 날이 궂어서 그런지 여기도 사람이 몇 없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몇명의 남녀만이 물속에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깔깔대고 뒹군다.
나도 저럴때가 있었나 싶다. 내 나이가 벌써.. 왠 궁상
아직 비가 간간히 내린다.
모래사장을 거닐다가 모래밭에 조개껍데기가 눈에 띄었다.
동생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줄 작정으로 이쁜놈으로다 두개를 주어서 가방속에 넣었다.
바다! 바다란 놈은 언제봐도 좋다. 그냥 눈으로 보는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트이고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주문진에 도착해서 서울행 티켓을 끊고 바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기 위해 주문진항으로 갔다.
항근처라 그런지 길한편에 횟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도착한 주문진 항구에 작은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유유히 작은 고기배들이 항구를 넘나든다.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바다위를 거침없이 날고 있는 물새들, 그리고 잔잔한 파도...
내 눈엔 보이는 것들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바다에 작별을 고하고 서울행 버스에 올라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원주를 지나 산넘고 물건너 드디어 내 삶의 터전, 서울에 도착했다.
이렇게해서 2004년 여름휴가가 모두 끝이 났다.
비록 비가 내리긴 했지만, 이번에 강원도에서 자연과 함께 한 시간들은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생활과 하루하루 짜여진 스케줄 속에서 벗어나 지나온 시간들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년엔? 글쎄... 아마 다시 가게 되면 또다른 느낌의 강원도를 만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