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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소개

추석연휴 영화보기_ 내츄럴 시티

관리자   /   2004-10-04

지난 추석연휴 동안 손 가까이에 늘 끼고 살았던 것은 공중파 방송 3사의 추석연휴 영화편성표였습니다. 이번 연휴기간에 방영한 영화 중에는 나름대로 최신작들과 화제작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굉장히 욕심이 나더군요. 사실 평소에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아이들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많이 보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서너 편 정도, 많으면 다섯 편 이상도 보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건 제 몸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판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려면 어느 정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 바로 이전 주(週)에 과로를 한 탓으로 이번 추석연휴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낮부터 쏟아지는 잠과 몰려드는 피로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겨우겨우 한편의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민병천 감독 – 내츄럴 시티 (Natural City)

이게 추석연휴 동안 제가 본 유일한 영화입니다.
사전에 그 명성(!!)을 많이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꼭 보고 싶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면으로 보아도 제작기간 5년에 제작비 70여억원 이라는 어마어마한 물량이었고 그 소재가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인간과 사이보그 사이의 사랑이라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저는 민병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정확하게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와 그 결과에 감명을 받고 있다고 할까요? 아직 두 작품밖에는 안 나왔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작품인 ‘유령’에서 받은 인상은 아주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제가 잠수함 나오는 영화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었는데(그래서 거의 무조건 일단 봅니다 – 붉은10월, 유령, 크림슨타이드, U-571, K-19, 그리고 U-보트 등등), 어쨌든 그래서 처음엔 그냥 무심코 보내 된 거죠. 누가 뭐라고 하든지간에,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잠수함 전투장면을 상당히 멋들어지게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뭐 비록 ‘유령’이 잠수함 액션 영화는 아니지만요. 그리고 영화 중에 자연광(햇빛)이 나오지 않고 어둑어둑한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제가 즐기는(?) 분위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의 어둠, ‘세븐’에서 시종일관 내리는 비와 검푸른 조명, 뭐 그런 걸 좋아하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잠수함 영화도 바닷속이 주된 배경이다 보니 비슷하게 어두침침한 조명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군요.아무튼 민병천 감독이 유령을 만든 이후 5년 동안 뭘 하는지 저는 거의 몰랐는데 그 동안의 결과물이 ‘내츄럴 시티’였던 겁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츄럴 시티’ 이야기를 좀 하도록 하지요. 저는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우리나라의 영화가 이 정도로 멋지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이 뒷받침되었지만 이건 진짜 배우들이 등장하는 실사영화인데, 미래사회를 그려내는 부분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나리오도 괜찮았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걸 표현해내는 기술(몇몇 배우들의 연기를 포함해서)이 조금 떨어지는 점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 영화에서는 이런 아까운 경우가 너무 많은데 ‘내츄럴 시티’는 그래도 그런 면에서는 아주 우수한 편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 한가지. 만약 ‘블레이드 러너’(아! 블레이드 러너!!)를 알지 못하는 상태로 이 영화를 봤다면 정말 대단했을 겁니다. 민병천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의 오마주(이거 저도 잘 몰라서 알아봤더니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자신의 영화에 그 영화의 요소를 비슷하게 옮겨다 쓰는 거라고 하더군요)라고 아예 밝혀놓았기 때문에 자꾸 비교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점을 한다고 해도 아주 깎아 내리기에는 이번 결과물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반적인 줄거리는 2080년의 미래사회에서 불법 사이보그를 제거하는 일을 하는 R(유지태)과 리아(서린)라는 이름을 가진 사이보그 사이의 사랑을 주된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리아를 살리기 위해 R이 불법 사이보그 밀매업자인 닥터 지로(정은표)를 만나고, 리아를 살리고 싶으면 DNA가 일치하는 시온(이재은)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라는 말에 시온을 찾아나서지요. 하지만 시온은 공교롭게도, 무단이탈한 전투용 사이보그인 사이퍼(정두홍)도 자신의 몸을 인간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 노리고 있는 표적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이 얽히면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중간중간에 R과 리아의 안타까운 사랑을 보여주는 예쁜 장면들과, 몇번의 격렬한 전투장면이 눈길을 끌지요.

‘내츄럴 시티’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엔 주연 외에도 낯익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영화 ‘유령’에 나왔던 두 조연배우들(윤주상-유령의 함장, 정은표-취사병, 그 왜 핵미사일 발사열쇠를 삼켜버렸던)이 다시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는 거 하구요. 어디서 본 사람인데, 하다가 나중에 배우들 명단을 보고 아하 하고 무릎을 쳤던 정두홍(많은 영화의 무술감독이며 만능스턴트맨) 씨가 그랬습니다. 조연급 연기자들 중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지요. 제겐 특히 정두홍 씨가 그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요즘 제가 보지 못한 많은 영화에 출연했더라구요.
그리고 처음 본 배우들 중엔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았던 서린…. 사실 이 영화에서는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독은 이 배역을 캐스팅하느라고 제일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만, 대사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사이보그 역할을 하느라 무표정인 경우가 많아서 그랬나 봅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아마 차가운 사이보그의 모습 가운데 따뜻함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고 영화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도 들어가 봤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제각각입니다. 상당수 사람들은 영화를 보다가 재미가 너무 없었던 나머지 자버렸다고(!!) 하고, 또 몇몇 사람들은 아주 좋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도 하고 그러더군요. 어느 신문에서는 매니아 층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보냈다고도 하고요. 이번에 영화 본 사람들이 쓴 이야기 중에서 공감하는 것 중 한가지는 배우들의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배우들의 발음문제인지, 영화사우드의 문제인지, 아니면 방송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배우의 발음이나 영화의 사운드가 문제라면 정말 문제이긴 하겠더군요. 제가 사운드나 뭐 그런 부문까지는 잘 모르는 문외한이라 더 이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껏 써놓은 글을 한번 읽어보니, 그냥 한명의 관객일 뿐 전문가도 아니면서 마치 영화를 잘 아는 것처럼 부끄럽게도 ‘오버’를 많이 했습니다. 뭐 결론적으로 재미있게 잘 봤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영화라는 생각도 들고요. 나중에 민병천 감독의 세 번째 영화가 나오면 또 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중에 ‘내츄럴 시티’를 혹 못 보신 분들께서 계시면 한번 시간을 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